삼성 주식을 들고 계신 분들이 지금 이 불안한 장세에 던져버리기 전에, 한 번만 더 읽어봐 주셨으면 해서 이 글을 씁니다. 공장 밖은 레미콘이 멈췄고, 공장 안은 헬륨이 증발하고 있습니다. 외국인은 하루 만에 삼성전자 주식 2조 원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삼성은 전 세계 빅테크에 D램 가격을 300% 올린 청구서를 새로 써서 보냈습니다. 미쳤다고요? 구조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집주인이 세 명뿐인 세계, 그 아이러니
D램을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에 딱 세 곳뿐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전부입니다. 전 세계 AI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급자가 세 곳뿐이라는 건, 세입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나갈 구멍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에 주요 라인이 집중되면서 범용 D램 공급이 더 줄었습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AI 연산 속도를 대폭 높인 차세대 메모리로, 지금 AI 서버 대부분에 필수로 들어가는 부품입니다. HBM을 만들수록 일반 D램 생산 여력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공급이 수요의 5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결과는 숫자로 찍혔습니다. 올해 2월 D램 수출 데이터를 보면 수출 수량은 10% 늘었는데, 수출 금액은 약 세 배가 뛰었습니다. 더 많이 만든 것도 아니고 더 많이 판 것도 아닌데 받는 돈이 세 배가 됐습니다. 판교 비즈니스 호텔에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올해 초부터 영어로 통화하는 장기 투숙객이 급증했는데,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구매 담당자들이 매일 아침 화성 삼성전자와 이천 SK하이닉스로 향하며 하는 말이 딱 하나였습니다. "3년치 물량 선불로 드릴게요."
삼성은 거절했습니다. 2027년까지 D램 가격이 계단식으로 오를 것이 뻔한 상황에서 3년을 미리 묶어버리면 미래 가격 결정권을 포기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구글과 아마존이 돈다발 들고 번호표를 뽑으며 기다리는데 삼성이 줄 서라고 문을 닫아버린 겁니다. 마이크론 실적 발표에서도 의미 있는 말이 나왔습니다. 범용 D램 마진이 HBM보다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없어서 못 파는 상품이 결국 가장 비싼 상품이 된다는 시장의 법칙이 그대로 재현됐습니다(출처: 마이크론 공식 IR).
저는 삼성 주식을 살 형편이 안 되면서도 이 장면을 보고 통쾌했습니다.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제발 던지지 마십시오.
호르무즈에서 평택까지, 보이지 않는 도미노
2026년 3월 26일에 구글 리서치가 블로그에 AI가 메모리를 16분의 1만 써도 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시장은 이를 수요감소로 해석했기 때문에 당일 주가가 마이크론 3.4%, SK하이닉스 6.23% 빠졌고 외국인이 삼성전자 주식 2조 3,400억원 넘게 순매도 하는 바람에 지분율이 12년 6개월만에 최저치(48.9%)로 급락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사실 1년 전의 자료였고 구글은 삼성 D램 가격 협상날에 맞춰 이 카드를 일부러 꺼냈을꺼라는 것이죠.
딥시크 사태 때도 똑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2025년 1월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AI 모델을 공개하자 엔비디아 주가가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시총 600조 원이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엔비디아는 신고가를 찍었습니다. AI 진입 장벽이 낮아지니 더 많은 기업이 GPU와 메모리를 사갔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라고 합니다. 기술 효율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해당 자원의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으로,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가 석탄 사용 사례에서 처음 발견한 원리입니다. 메모리 효율이 좋아지면 수요가 준다는 논리는 역사적으로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 그걸 알고 이용한거죠. 이렇게 삼성은 소프트웨어의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위안화로 통행세를 받기 시작하며 중동의 원유를 공급이 막히면서 하드웨어의 위기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원유가 없으니 나프타 생산 줄고, 나프타가 없어서 에틸렌을 못 만들고, 에틸렌이 없으면 혼화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혼화제란 콘크리트에 첨가해 강도를 높이고 굳는 속도를 조절하는 소재로, 이게 없으면 레미콘 자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결국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증설 현장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또 반도체 냉각에 쓰이는 헬륨의 65%가 카타르에서 옵니다. 이란이 카타르 LNG 시설을 공격하면서 전 세계 헬륨 공급의 30%가 사라졌고 가격은 두 배로 뛰었습니다. 회로를 깎을 때 쓰는 브롬은 전 세계 공급의 97%가 이스라엘 사해에서 나오는데, 그곳이 지금 전쟁터입니다(출처: 한국무역협회 공급망 리포트). 구글이 소프트웨어로 흔들 때, 중동은 하드웨어로 조르고 있었던 겁니다. 앞뒤로 동시에 맞은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삼성은 가격을 올렸습니다.
IMF의 기억, 그 DNA가 지금도 돌고 있다
제가 어렸을 때 IMF 겨울을 봤습니다. 어머니가 결혼 패물로 받은 금반지와 금목걸이를 전부 들고 나가서 금 모으기 운동에 내놓으셨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솔직히 기대하기 어려운 종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금반지들이 모여서 나라의 외환위기를 버텨냈고, 그 겨울에 삼성은 치고 나갔습니다.
IMF가 터진 지 5년 후 삼성이 한 해 벌어들인 무역 흑자는 145억 달러였습니다. 그해 대한민국 전체 무역 흑자는 108억 달러였습니다. 삼성 혼자 나라 전체 흑자보다 더 많이 벌어온 것입니다. 삼성이 없었다면 그해 한국은 적자였습니다. 이게 왜 가능했을까요. 이건희 회장은 IMF가 터지기 1년 전인 1996년에 이미 비상경영을 선포했고 그 판단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 윗세대 이병철 창업회장이 1983년 2월 전화 한 통으로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을 때, 인텔은 과대망상이라 비웃었고 일본 미쓰비시는 삼성이 반도체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담은 보고서까지 냈습니다. 9개월 후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0년 후 D램 세계 1위가 됐습니다. 이게 삼성의 DNA입니다.
제가 삼성을 계속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년 전 HBM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고 반성문을 쓴 삼성이, 전영현 부회장을 클린룸으로 내려보내 공정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습니다. 그 재설계가 HBM 발열 문제를 잡았고, 엔비디아 인증이 뚫렸고, GTC 무대에서 젠슨 황이 삼성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이걸 개인 기업의 성과로만 보면 안 됩니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지분을 약 8% 보유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주가에 파란불이 켜질 때 우리 모두의 노후 자금에도 빨간불이 켜지는 구조입니다(출처: 국민연금공단 포트폴리오). KB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32만 원으로 제시했고, 2026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사상 최대인 82조 원입니다. D램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이어진다는 전망과 빅테크들의 장기계약 요청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1973년 오일쇼크 때 한국은 위기의 진원지인 중동으로 가서 달러를 벌어왔습니다. 그 오일달러가 경부고속도로가 됐고 포항제철이 됐습니다. 지금 중동이 또 막혔고, 삼성은 또 가격표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기업인들이 쌓아온 이 구조가 지금 한국 경제를 버티게 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삼성 주식을 쉽게 던질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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